배롱나무 꽃 만개한 담양의 명소, 명옥헌 원림
임창균 기자 관광
명소 2022.08.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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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매일신문과 HNN뉴스는 공동 취재촬영을 위해 고서면에 위치한 명옥헌 원림을 방문했다. 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명옥헌의 모습을 살펴보고 박이진 문화해설사로부터 명옥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원림의 구조에 대해>
먼저 명옥헌의 이름은 계곡에 흘러내려가는 물소리가 옥구실처럼 맑다하여 울명에 구슬 옥 자를 썼다.
이 명옥헌에 상지와 하지 두 개의 연못이 있다. 명옥헌 바로 옆에 있는 상지보다는 아래의 하지 연못이 훨씬 더 크고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명옥헌 바로 옆 계곡에 흘러내려가는 물길이 상지로 한번, 하지로 한번 흐르면서 이렇게 큰 연못을 이루게 되었는데, 여름철이 되면 백일홍 꽃과 함께 우리에게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명옥헌의 유래는>
이 명옥헌은 조선 중기 때 선비이셨던 명곡 오희도가 공부하셨던 망재라는 서재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망재는 잊을 망자를 써서 ‘세속을 잊고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오희도 선생님은 인조가 왕에 오르자 과거에 급제하셔서 서울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불과 8개월 만에 천연두에 걸려서 돌아가시게 되자, 그의 아들 오명중이 망재를 명옥헌이라 이름하여 아버지를 기렸다.
<명옥헌 안에 있는 현판이 궁금하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능양군일때 전국에 내 편이 되어줄 만한 선비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때 의병장 고경명의 손자인 고부천을 찾아 창평에 왔는데, 오히려 고부천이 오희도를 소개를 해줬다. 능양군은 오희도를 보기 위해 이곳을 3번이나 찾아왔는데 유비가 제갈공명의 집을 세 번 찾았다는 삼고초려의 줄임말로 삼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인조와 오희도 선생의 인연을 담고 있는 현판이라 할수 있다.
인조가 오희도를 찾아왔을 때 명옥헌 입구의 은행나무에 말을 메고 걸어 올라왔는데, 그곳이 바로 후산리 은행나무다.
명옥헌 계곡 암반에는 조선 후기 학자이셨던 우암 송시열 선생의 흔적이 또 남아 있다. 암반에 쓰여진 ‘명옥헌 계축’ 바로 그 글씨가 우암 선생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원림의 구조에 대해>
먼저 명옥헌의 이름은 계곡에 흘러내려가는 물소리가 옥구실처럼 맑다하여 울명에 구슬 옥 자를 썼다.
이 명옥헌에 상지와 하지 두 개의 연못이 있다. 명옥헌 바로 옆에 있는 상지보다는 아래의 하지 연못이 훨씬 더 크고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명옥헌 바로 옆 계곡에 흘러내려가는 물길이 상지로 한번, 하지로 한번 흐르면서 이렇게 큰 연못을 이루게 되었는데, 여름철이 되면 백일홍 꽃과 함께 우리에게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명옥헌의 유래는>
이 명옥헌은 조선 중기 때 선비이셨던 명곡 오희도가 공부하셨던 망재라는 서재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망재는 잊을 망자를 써서 ‘세속을 잊고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오희도 선생님은 인조가 왕에 오르자 과거에 급제하셔서 서울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불과 8개월 만에 천연두에 걸려서 돌아가시게 되자, 그의 아들 오명중이 망재를 명옥헌이라 이름하여 아버지를 기렸다.
<명옥헌 안에 있는 현판이 궁금하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능양군일때 전국에 내 편이 되어줄 만한 선비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때 의병장 고경명의 손자인 고부천을 찾아 창평에 왔는데, 오히려 고부천이 오희도를 소개를 해줬다. 능양군은 오희도를 보기 위해 이곳을 3번이나 찾아왔는데 유비가 제갈공명의 집을 세 번 찾았다는 삼고초려의 줄임말로 삼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인조와 오희도 선생의 인연을 담고 있는 현판이라 할수 있다.
인조가 오희도를 찾아왔을 때 명옥헌 입구의 은행나무에 말을 메고 걸어 올라왔는데, 그곳이 바로 후산리 은행나무다.
명옥헌 계곡 암반에는 조선 후기 학자이셨던 우암 송시열 선생의 흔적이 또 남아 있다. 암반에 쓰여진 ‘명옥헌 계축’ 바로 그 글씨가 우암 선생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 임창균 기자 jyn93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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